원문: 폭파된 밤섬, 여의도에 밀려나…실향민들 58년 전 '국가폭력' 규명한다 — 한겨레
개요 #
서울 한강 한복판, 서강대교 아래 '밤섬'은 지금은 철새만 오가는 무인도지만 한때 62가구 443명이 살던 섬이었다. 주민들은 땅콩 농사를 짓거나 배를 수리하며 생계를 꾸렸고, 가물면 노량진까지 이어지는 백사장에서 아이들이 뛰놀았다. 그 평온은 1968년 폭파음과 함께 사라졌다.
58년이 지난 지금, 밤섬 실향민 100여 명이 오는 23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한다. 1960년대 서울 개발 과정에서 이뤄진 강제이주의 폭력성과 인권 침해를 조사해달라는 것이다. 아울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낼 계획이다.
여의도 개발이 삼킨 섬마을 #
1968년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추진한 한강·여의도 개발 계획에 밤섬이 걸렸다. 서울시는 여의도를 '서울의 맨해튼'으로 만들겠다며 밤섬의 바위와 모래를 개발 자재로 활용하기로 했다. 섬을 폭파해 한강 흐름을 바로잡고 범람을 막겠다는 명분도 따라붙었다.
주민들은 최후 퇴거 통첩을 받은 지 보름 만인 1968년 1월 섬에서 쫓겨났다. 주민 성정부(86)씨는 "하필 얼음이 녹을 때였다. 한 가족은 이삿짐을 썰매에 싣고 나오다가 얼음이 깨져 살림살이를 다 잃어버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보상금은 전체 주민 앞으로 2020만 원이었다. 현재 가치로 6억 6천만 원 수준인데, 62가구에 나눠보면 한 가구당 1천만 원 남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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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거 이후에도 이어진 시련 #
서울시는 밤섬이 보이는 와우산(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시켜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현재 상수역 일대에 천막을 치고 수개월을 버텼다. 유정림(95)씨는 "가족 5명이 3~4평 맨바닥에 나무판자와 스티로폼을 깔고 난로에 기대어 겨울을 났다"고 기억했다.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서울시가 와우산 이주를 허락했지만, 불도저로 땅 한 번 밀어준 게 고작이었다. 자재도 자금도 없었다. 주민들은 맨손으로 집을 올려 마을을 다시 세웠다. 그마저 1995년 와우산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또다시 쫓겨났다.
"한강의 기적 뒤에 가려진 58년의 희생" #
가난은 대물림됐다. 밤섬이 사라진 해에 태어난 마성인(58)씨는 "같은 학교를 다녀도 와우산 '산사람'이라고 괄시 받았다. 서울시와 정부가 강제이주 이후 충분한 보상을 안 했기 때문에 다들 어렵게 살았다"고 했다.
지승민(64) 밤섬보존회 사무국장은 "밤섬에 살았던 주민들 80%가 이미 돌아가셨다.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밤섬 실향민 대리인을 맡은 파이팅챈스(법무법인 원곡 공익법률센터)의 변상철 국장은 "밤섬 강제이주는 여의도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진 명백한 국가 폭력"이라며 "화려한 '한강의 기적' 뒤에 철저히 가려진 58년의 희생인 만큼, 국가가 진실을 규명하고 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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