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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PUBLISHED · 2026년 6월 22일·13 MIN READ

믿고 가던 동네 새마을금고 전무가 대포통장 조직의 한패였다

대구 이곡금고 임직원이 3년 8개월간 대포통장 조직과 결탁해 통장 126개를 발급한 사건을 통해, 제2금융권이 범죄의 숙주가 된 과정을 짚어본다.

#사회#금융범죄#보이스피싱#대포통장#제2금융권
Local credit union executive colluded with illegal bank account ring

원문: 믿고가던 동네금고 전무 대포통장 조직 한패였다 — 동아일보

동네 금고가 범죄의 통로가 되기까지 #

직원이 10명 남짓한 작은 새마을금고. 주민들이 믿고 돈을 맡기던 대구 달서구 이곡금고에서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도박에 쓰인 대포통장 126개가 흘러나왔다. 통장을 만들어 준 건 다름 아닌 금고의 실무를 총괄하던 전무였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판결문과 내부자 증언으로 추적한 이곡금고 사건은, 시중은행의 감시가 촘촘해지자 검증이 느슨한 제2금융권을 파고든 대포통장 조직의 전형을 보여준다. 더 무서운 건 이곳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압수수색 영장을 찍어 조직에 넘긴 전무 #

2024년 9월 4일, 이곡금고에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날아들었다. 이 금고에서 내준 통장 수십 개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쓰였다는 내용이었다. 남의 명의를 빌리거나 가짜 회사를 세워 만든 대포통장이었다.

이튿날, 금고 전무 이영환(가명·52)은 조용히 움직였다. 휴대전화로 압수수색 영장을 몰래 찍어 곧장 '구사장'에게 보냈다. 구사장은 대포통장 유통 조직의 총책 구태영(가명·48). 며칠 뒤 밖에서 만난 이 전무는 그에게 경고했다. "우리가 만든 대포통장이 수사받고 있어."

수사망이 좁혀 오는 순간까지, 금고 간부는 범죄 조직과 한 몸이었다.

두 집단의 거래는 어떻게 시작됐나 #

은행원과 대포통장 조직의 거래는 2021년 4월 시작됐다. 당시 대형 은행들이 통장을 내줄 때 그 회사 사무실을 불시에 찾아가 실제로 영업하는지 확인하는 식으로 감시를 강화했다. 통장 장사가 어려워진 조직들은 새 구멍을 찾고 있었다.

그 무렵 구사장은 작업 대출 브로커의 소개로 이 전무를 만났다. 몇 번의 만남으로 친분을 쌓은 구사장은 금고 인근 유흥주점에서 본론을 꺼냈다. "저희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거든요. 판돈을 받을 통장을 좀 만들어 주십쇼." 이 전무는 수락했다. 3년 8개월간 이어질 공생의 시작이었다.

구사장 일당은 가짜 건설사를 세우고 이곡금고를 찾아가 회사 명의로 대포통장을 찍어냈다. 굳이 유령 회사를 세운 이유는 따로 있다. 회사 명의 통장은 한 번에 수십억 원도 옮길 수 있어서다. 새로 만든 개인 통장은 하루 송금 한도가 1000만 원도 안 되지만, 이 전무는 구사장 통장의 한도를 곧바로 풀어줬다.

신고자 정보를 넘기는 정보원이 된 은행원 #

이 전무의 도움은 한도 해제에서 그치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신고하면 통장은 동결된다. 그런데 구사장의 통장이 잠기면, 이 전무는 금고 전산망을 뒤져 신고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찾아 구사장 일당에게 넘겼다. 검찰이 확인한 것만 508차례. 이때부터 그는 은행원이 아니라 범죄 조직의 정보원이었다.

구사장 일당은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어 겁박했다. "내가 너 누군지 모를 거 같아?" 정체 모를 협박에 신고자들은 신고를 거둬들였고, 동결됐던 통장은 되살아났다. 이 전무가 직접 동결을 풀어준 뒤 이를 구사장 측에 알린 적도 있다.

"통장 2개 동결 다 풀었다. 사용해라. ㅎㅎ" (이 전무) "네, 감사합니다. 형님." (구사장 조직원)

이런 뒷배 덕분에 구사장의 통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지되지 않는 통장'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업계 은어로 '메이커장(帳)'이다. 일반 대포통장의 한 달 대여료가 500만 원 안팎인데, 구사장의 통장은 그 두 배인 1000만 원을 호가했다.

'갑'이던 금고가 '을'로 뒤바뀌다 #

2023년 무렵엔 관계가 뒤집혔다. 통장을 만들어 주던 '갑'인 금고가 구사장에게 돈을 구걸하는 '을'이 됐다. 이곡금고가 심사도 제대로 않고 내준 부동산 대출에서 이자가 끊기며 40억 원대 적자가 난 것이다.

부실이 감사에 걸릴까 두려웠던 금고 간부들은 구사장에게 손을 벌렸고, 구사장은 여자 친구 명의 통장으로 3억8400만 원을 무이자로 빌려줬다. 범죄 조직을 신고해야 할 금고가 그 조직의 돈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두 겹의 감시망은 왜 무용지물이었나 #

이곡금고의 내부 통제는 허물어져 있었다. 실무 전반을 쥔 사람이 바로 이 전무였기 때문이다. 부하인 정모 상무와 박모 부장도 범행에 가담했다.

의심을 품은 직원이 없던 건 아니다. 매일 금고를 드나들며 회사 통장을 새로 트는 구사장 일당을 수상하게 여긴 직원이 "더는 통장을 못 내주겠다"며 업무를 거부하자, 이 전무는 그 직원의 담당 업무를 아예 바꿔 버렸다.

금고에는 내부 감사와 새마을금고중앙회 감사라는 두 겹의 감시망이 있었다. 하지만 분기마다 하는 내부 감사는 금융 전문가가 아닌 지역 유지 출신 감사 2명이 형식적으로 진행했다. 한 전직 이사장조차 "감사들이 이틀 정도 나와 서류를 보는데, 전문 지식이라곤 중앙회에서 일주일 교육받는 게 전부"라고 털어놨다. 2024년 5~6월 진행된 중앙회 감사에서도 대포통장 발급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5년 새 두 배 넘게 뛴 제2금융권 비중 #

이곡금고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우려에는 근거가 있다. 최근 5년간(2021~2025년) 보이스피싱에 쓰여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회사 명의 대포통장 2만4259개를 전수 분석한 결과, 제2금융권에서 발급된 비중은 2021년 19.1%에서 지난해 46.8%로 치솟았다. 반면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의 비중은 줄었다.

제2금융권 중에서도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에서 발급된 대포통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두 곳은 지역 주민이 출자해 세운 독립된 협동조합 형태라 중앙회의 통제 권한이 약하다. 시중은행이 실사 등 절차를 강화하자, 검증이 느슨한 상호금융을 범죄 조직이 파고든 것이다.

수사 중에도 쇄도한 "통장 사고 싶다" #

영원할 것 같던 범죄는 결국 꼬리를 밟혔다. 대포통장 조직 내분에서 시작된 투서가 단서였다. 검찰이 약 410개의 통장과 120건의 관련 사건을 추적해 보니, 구사장 일당은 유령 회사 설립과 통장 개설, 판매까지 역할이 세분된 기업형 조직이었다. 확보한 휴대전화에는 대포통장 리스트와 대여료가 장부처럼 정리돼 있었다.

수사 중에도 구사장의 텔레그램은 "당장 통장을 사고 싶다"는 메시지로 가득했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우리 통장을 사려는 곳이 너무 많아 하루에도 수십 곳씩 연락이 왔다"고 진술했다.

구사장이 유령 회사 15개를 세워 이곡금고에서 발급받은 대포통장은 총 126개. 법원이 인정한 통장 장사 수익만 29억 원이었다. 이 통장을 사들인 다른 조직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합병된 금고와 4년형 #

검은돈의 혈관을 열어 준 대가로 이 전무 등 금고 임직원이 챙긴 돈은 법정에서 1509만 원만 인정됐다. 구사장이 술값을 대거나 현금을 찔러준 정황은 7500만 원 넘게 있었지만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 부패와 부실이 겹친 이곡금고는 1980년 설립 이래 45년 만인 지난해 3월 인근 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박형철 서울동부지검 검사는 "이 전무는 수사 과정에서 '통장 발급해 달래서 해준 게 왜 문제냐'고 항변했다. 구사장 일당이 얻은 수익을 알려주자 그제야 눈빛이 흔들렸다"고 했다. 검찰은 구사장 일당처럼 체계적으로 대포통장을 찍어내는 기업형 조직이 전국에 최소 20곳 이상 활개 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전무와 구사장은 금융실명법 위반죄 등으로 각각 징역 4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이 글은 위 출처를 바탕으로 한국 독자를 위해 재작성한 기사입니다. 원문의 사실과 수치에 근거하며, 별도의 견해를 포함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