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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PUBLISHED · 2026년 8월 18일·10 MIN READ

나는 엔지니어인가? — 어느 개발자의 자기 정의에 대한 기록

Dev.to에 올라온 개인 에세이. 예술과 영양학 배경을 거쳐 IT 업계에 들어선 저자가 '엔지니어'라는 호칭의 의미와 자기 정체성을 되짚는다.

#career#discuss#programming#productivity
Engineering: Dreams, or Self-Actualization?

개요 #

"당신은 언제부터 스스로를 엔지니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나요?"

Dev.to에 올라온 에세이 한 편이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글쓴이 Anna Villarreal은 예술과 영양학을 공부하다 IT 업계로 넘어온 사람이다. 그는 엔지니어라는 단어를 두고 "거창하고 권위 있게 들리는 호칭(lofty, prestigious-sounding title)"이라고 표현하면서, 정작 자신은 거창하지도 권위 있지도 않다고 못 박는다. 다만 한 가지는 인정한다. 질문을 던진다는 것.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 #

글쓴이가 스스로에게서 발견한 유일한 특성은 의심이다. 더 나은 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사람들이 왜 낡은 절차와 사고방식을 그대로 따르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썼다.

지금 그가 일하는 곳은 학교다. 이곳에서는 모든 정보가 알아야 할 사람에게만(need-to-know) 공유된다. 그래서 어떤 일이 왜 그런 방식으로 굴러가는지 알아내려면 스무 개쯤 되는 벽돌 벽을 뚫고 나가야 한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끈기가 어제의 논리에 답을 준다. 오늘이 내일을 만든다.

그가 가장 견디지 못하는 건 무관심이다. 15년째 아무 의미 없는 절차를 그저 늘 그래왔다는 이유로 반복하는 태도. 이전 직장들에서도 그는 늘 질문을 품고 있었지만,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대체로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라미네이터를 배운 이유 #

에세이에서 가장 구체적인 장면은 옆방의 라미네이터 이야기다.

그 기계를 다루던 직원이 몇 달간 자리를 비웠다. 설명서도 없고 사전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글쓴이는 산업용 대형 라미네이터 사용법을 혼자 익혔다. 자기 직무 기술서에 없는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손을 다치기도 했다. 결과는 학기 초에 몰린 라미네이터 수요를 감당해낸 것, 그리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썼다. 아주 작은 도움 한 조각이 삶에 의미를 준다는 것이다.

문제를 파고드는 시선 Photo by RF._.studio _ on Pexels

"엔지니어링 팀" 명단에서 본 내 이름 #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가 있다. 이전 직장에서 이곳저곳 뒤지고 다니던 어느 날, 사내 문서의 "Engineering Team" 항목에 자기 이름이 올라가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고, 그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심장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누군가 자신을 그 범주에 넣을 만큼 높게 봐줬다는 사실이 영광스러웠고, 혹시 실수로 들어간 거라면 사실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그 상태로 남아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실제 직함은 "네트워크 설치 및 컴퓨터 기술 견습생" 비슷한 무언가였다. 한겨울 야외에서 맨손으로 케이블을 결선하던 시절이었고, 그해 연 수입은 2만 달러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IT와 기술 업계로 들어가는 문턱을 넘기 위해 그 일을 택했다고 썼다. 운이 좋다면 언젠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으니까 — AI가 그 작은 계획을 망치지만 않는다면.

hacker dude

호칭에는 실체가 있는가 #

글쓴이는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주장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예술과 영양학 배경으로 이 판에 들어온 이상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국가별 차이를 짚는다. 캐나다는 엔지니어 호칭에 엄격한 요건을 둔다. 반면 미국에서는 해골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딱지를 붙여도 통하고, 그걸로 밈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이 호칭에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답은 내리지 않고 더 생각해볼 문제로 남겨둔다.

한편 구글에서 자기 존재의 진실을 검색하던 중 그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질문을 던지고, 타당한 근거로 뒷받침된 답을 파고드는 행위 자체가 지극히 엔지니어다운 일이라는 것. 스스로를 보며 웃었다고 한다. 그러다 곧 생각을 뒤집는다. 아니, 나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철학자다. 하지만 철학이야 누구나 가질 수 있으니, 이쯤에서 그만두겠다고 마무리한다.

아직 시작일 뿐 #

에세이 후반부는 자기 분석으로 향한다.

그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늘 스스로를 뜯어보는 사람이었다고 쓴다. 배움은 늘 어려운 방식으로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는 탱크가 되거나 무언가에 110% 뛰어드는 능력을 갖게 됐다. 원래 지니고 있던 기질인데, 인생의 상당 기간은 무게 없는 것들을 쫓느라 흩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가장 큰 건 지루함이었다. 주변에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답답함. 이게 전부일 리 없고 분명 더 있을 거라는 확신. 그는 자신을 영원한 학생이라 부른다. 대학 과정만 8년 치가 쌓였고, 이런저런 배움은 별도다.

그런데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자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다만 *존재하고 있다(present)*는 것만은 안다고.

꿈이 적힌 종이가 담긴 유리병 Photo by Pixabay on Pexels

글은 Jay Shetty의 책 『How to Think Like a Monk(수도자처럼 생각하기)』 구절로 닫힌다. 평생 자신과 함께하는 유일한 것은 호흡이라는 문장이다. 글쓴이는 여기에 자기 해석을 붙인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머지는 전부 변수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뜻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질문을 품은 여자도 그 거창한 엔지니어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글은 위 출처를 바탕으로 한국 독자를 위해 재작성한 기사입니다. 원문의 사실과 수치에 근거하며, 별도의 견해를 포함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