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대홍수 구호 현장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 — 20년 교민이 전한 실상
2015년 강진 때는 구호를 마치기까지 3년이 걸렸지만, 이번 대홍수는 끝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네팔에서 20년 넘게 구호 활동을 해온 교민 문광진씨가 트리슐리강 일대의 상황을 전했다.

원문: [네팔 대홍수] "2015년 강진 땐 구호에 3년…이번엔 예상조차 불가능" — 연합뉴스
개요 #
지난달 26일 네팔을 덮친 대홍수의 구호 현장은 11년 전 대지진 때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2000년부터 네팔에 정착해 20년 넘게 현지 구호 활동을 이어온 교민 문광진(55)씨는 그 차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그때는 많은 주택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무너졌지만, 지금은 마을마다 통째로 사라졌잖아요."
문씨는 지난 4일(현지시간) 수도 카트만두 남쪽 바그마티주 랄리트푸르에서 연합뉴스 특파원을 만나 현장 상황을 전했다. 2015년 강진 때는 구호 활동이 마무리되기까지 약 3년이 걸렸는데, 이번 홍수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강진 때와 무엇이 다른가 #
2015년 네팔에서는 규모 7.8의 지진으로 약 8천900여명이 숨졌다. 건물 100만채가량이 부서졌고 복구 비용은 90억달러(약 12조4천억원)로 추산됐다. 이재민 400만명이 1년 넘게 천막이나 임시 건물에서 지냈고, 학생 100만명은 교실이 없어 수업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문씨는 2002년부터 국제 구호개발 NGO '희망친구 기아대책'과 함께 현지에서 활동해왔다. 네팔 학생 교육, 지역 개발 사업, 물품 후원을 꾸준히 해왔고 강진 참사 현장도 오래 지켰다. 그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더 서둘렀다.
달라진 건 구호의 물리적 조건이다. 문씨는 "강진 때는 많은 이재민이 무너진 자기 집 앞에 천막이나 임시 건물을 짓고 생활했기 때문에 집마다 찾아다니며 구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마을 자체가 사라져 구호할 집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피해 범위도 강진 때보다 좁아 여러 구호단체의 활동 지역이 겹치는 상황이다.
트리슐리강을 사이에 둔 두 지역 #
문씨는 홍수 다음 날부터 바그마티주 누와코트 지역의 비두르와 트리슐리 바자르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했다. 비두르는 실종자 수색용 헬기가 매일 뜨는 트리슐리 군사기지 인근에 있고, 트리슐리 바자르는 비두르에서 홍수가 휩쓸고 간 트리슐리강 상류 쪽으로 6㎞가량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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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강을 기준으로 뚜렷하게 갈렸다. 문씨는 "지도에서 볼 때 트리슐리강을 사이에 놓고 서쪽에 트리슐리 바자르가, 그 동쪽 아래에 비두르가 있다"며 "상류부터 휩쓸고 내려온 홍수로 강 동쪽에서 사망자와 실종자가 많이 나왔고, 트리슐리 바자르가 있는 서쪽은 상대적으로 생존자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걸어온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상류 지역인 둔체 등지에서 산길을 따라 50∼60㎞를 최소 이틀에서 나흘 동안 걸어 하류로 대피했다. 한국인 9명이 실종된 람체와 둔체 인근에서 내려온 이재민도 많았다. 문씨는 "그 지역 150가구 마을에서 25가구 주민만 살고 나머지는 다 죽거나 실종됐다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대피소에서 시작된 또 다른 고통 #
트리슐리 바자르 인근 학교와 교회에는 임시 대피소가 마련됐다. 학교 대피소 한 곳에만 500명이 모여 숙식을 해결하다 보니 불편이 겹겹이 쌓인다.
가장 큰 문제는 잠자리다. 문씨는 "네팔은 침대를 사용하는 문화여서 시골에 가도 다들 침대에서 잔다"며 "이재민들이 교실이나 교회 시멘트 바닥에서 자는 것을 제일 불편해해 매트리스를 추가로 지원하려 한다"고 말했다.
여성과 아이들을 친척 집으로 보내고 남성만 대피소에 남는 경우도 많다. 가족이 흩어지는 걸 감수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대피소에 있어야 구호 물품을 받고 정부 지원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끊긴 도로, 길어지는 구호 #
네팔 정부는 사태 초기 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세이브더칠드런 등 일부 단체에만 구호 활동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명피해와 이재민이 계속 늘면서 최근에는 모든 구호단체의 활동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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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문씨는 이번 구호가 강진 때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접근성 때문이다. 그는 "강진 때는 집이 많이 무너졌지만 그나마 도로가 괜찮아 피해 지역에 들어갈 수는 있었다"며 "지금은 도로가 많이 끊겨 구호 물품을 피해 지역으로 옮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다음 과제는 정착지다. "대피소 중심의 구호가 진행되는 동안 정부가 이재민들의 기존 정착지를 정비하거나 새 정착지를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민들의 가장 큰 걱정도 결국 같은 데 있다. 문씨는 "고향에 돌아가서 천막이라도 쳐서 잠은 잘 수 있지만, 식기류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어떻게 먹고살지를 제일 걱정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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