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헌법에 막힌 트럼프의 '반이민 상징'…보수 대법원, 출생 시민권 지켜내 — 한겨레
개요 #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주는 '출생 시민권'을 없애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연방대법원에서 막혔다. 30일(현지시각) 나온 판결의 핵심은 출생 시민권 자체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대통령이 행정명령만으로 헌법이 정한 시민권의 범위를 바꿀 수 있느냐였다. 대법원은 그럴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 이민정책의 상징처럼 앞세운 정책이 보수 우위 대법원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헌법과 판례가 막아선 행정명령 #
출생 시민권은 미국 이민 논쟁에서 해묵은 쟁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체류자나 임시 체류자의 자녀에게까지 자동으로 시민권을 주는 제도가 불법 이민과 이른바 '원정출산'을 부추긴다고 주장해왔다.
대법원 다수 의견은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정헌법 14조의 문언과 1898년 '미국 대 웡 김 아크' 판례가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시민권을 폭넓게 인정해온 오랜 법적 전통을 뒷받침한다고 봤다. 외교관 자녀 같은 극히 제한된 예외를 빼면, 부모의 체류 신분만을 이유로 미국 출생자의 시민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 대법관들도 등을 돌렸다 #
정치적으로도 파장이 작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첫날 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이민정책 전환의 신호탄으로 삼았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으로 대법원 구두변론에 직접 출석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상징성이 큰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특히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에이미 코니 배럿, 브렛 캐버노 대법관 같은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 나란히 다수의견에 선 점이 눈에 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대법관 일부조차 행정부 편에 서지 않은 것이다.
이민정책 전체를 멈춘 것은 아니다 #
다만 이번 판결이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 전체에 제동을 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은 최근 다른 사건들에서는 대통령의 독립기관장 해임권 확대 등 행정권 강화 흐름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이번 결정은 그런 흐름 속에서도 시민권처럼 헌법과 장기 판례에 뿌리내린 권리만큼은 대통령의 일방적 명령으로 뒤집기 어렵다는 한계를 확인한 판결에 가깝다.
시엔엔(CNN)은 캐버노 대법관이 별도 의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현행 연방법에 어긋난다'는 결론에는 동의했지만, 헌법이 반드시 그런 해석만을 요구하는지는 따로 판단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앞으로 의회가 입법으로 시민권 범위를 손보려 할 경우 다시 논쟁이 벌어질 여지를 남겼다는 분석이다.
앞으로의 전망 #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 출생 시민권 자체를 흔들기보다 국경 통제, 체류 단속, 비자 심사 강화 같은 다른 수단으로 이민 억제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출생 시민권 제한은 의회 입법이나 헌법 개정 없이는 추진하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
비비시(BBC)는 "대법원이 재편된 뒤에도 트럼프 대통령 정치 경력의 핵심 약속 중 하나를 기각한 판결"이라며 "수정헌법 제14조가 보장하는 출생 시민권은 대통령의 펜 놀림 한 번으로 무효화될 수 없다는 분명한 제도적 질책"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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